이 글은 BNU 님의 글에 댓글을 달다가 블로그에도 좀 더 생각을
정리해서 남겨 볼 겸 작성한 글입니다.
여기에 언급된 도구들, 그리고 개발진행 관련 소식 등은 모두
외부에 공개된 것들을 중심으로 작성한 것이며
당연하게도, 제 주관적인 생각들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제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있거나
혹은 사실이긴 하지만 오해를 살 소지가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겸허히 인정하며, 말씀해주시면 차후라도 수정 할 용의가 있음을
미리 밝혀두고 싶습니다.

이 밖에 이것 저것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은데
그러다간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지쳐버릴 것 같아
무례를 무릎쓰고 두서 없이 이야기를 꺼내 볼까 합니다.
편하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1. 정체되는 혁신

현재 게시판/CMS 는 제로보드/XpressEngine 이, 블로그 도구로는 Textcube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Textcube 는 티스토리 등을 합치면
범 텍스트큐브 계열 전체로 따졌을 때 전체 블로그 도구의 약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XpressEngine 의 경우 제로보드4 까지 포함하면
역시 그 정도의 Market Share 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즉 증명하긴 힘들지만, 대충 요약해보면, 웹 도구들의 사용 분포가
1위 (약 80%) 와 나머지 (약 20%) 의 비율이 될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1위 도구들 (XpressEngine, Textcube) 의 혁신은 지속가능한
혁신을 이루어내고 있는데, 나머지 도구들은 현재 거의 정체되고 있거나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단번에 생각할 수 있는 질문으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설치형 블로그 도구중에, 국내에서 개발된 것 중 'Textcube(구 태터툴즈)' 말고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는 도구는 무엇이 있습니까?"
만약 위 질문에 답하신 분이 계시다면, 다음 질문도 답해 보시길 바랍니다.
"말씀해주신 도구는 언제 마지막으로 업데이트가 되었나요? 현재 사용자층은
어느 정도나 됩니까? 혹은, 주변에서 이 도구를 쓰는 분을 보셨습니까?"
단언컨데, 두번째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으신 분들이 매우 적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게시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게시판/CMS 는 제로보드4와 XpressEngine, 그리고 그누보드3/4 이렇게
양분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누보드4 는 제로보드4와 견줄만 하지
XpressEngine 과 견줄만 하지는 않습니다. XpressEngine 은 CMS 이므로,
견주자면 킴스큐 정도가 해당되는데 킴스큐는 아직 Market Share 면에서
XpressEngine 과 비교할만한 대상이 아닙니다. (개발 초기단계입니다.)

여기서 더욱 우려스러운 상황은, 게시판이든 CMS 든 블로그 도구든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도구들이 더 이상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이는 예~전에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며,
이제는 거의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새로움은 없고, 기존 도구들은 거의 정체되고 있으며 오직 많은 사용자를 거느린
도구만 계속 살아남아 혁신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현상은
계속 가속화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2.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

Textcube 의 경우 예전에는 TNC 의 지원을 받았었고, 지금은 Google 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XpressEngine 의 경우에는 NHN 의 지원을 받고 있구요.
공교롭게도 두 도구 모두 검색 사업을 하는 1위 업체에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구글: 해외에서 1위 / NHN 의 NAVER: 국내 1위)

나머지 도구들은 어떨까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지원이 전무하진 않지만 매우 미미한 수준"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호스팅등의 지원은 받고 있지만, 디자인 리소스에 도움을 받을 수 있거나
전문 개발자분들과 협업이 가능하거나 이런 건 매우 드물며 힘든 상태입니다.

대부분의 도구들이, 혼자 혹은 많아봐야 2~3명의 자원자로 힘겹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처한 상황은 저마다 조금씩 상이하지만, 패턴은 비슷합니다.

재미로 시작했고, 개인적인 성취감이 원동력이었으나 사용자가 많아지고
일이 점점 커지면서 혼자 감당하기엔 부담스럽게 되었고, 주변에 도움은 없는 상태에서
갈수록 현업과의 갈등이 증폭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현실에 충실해야 할 시점이 오게되고
결국 손을 놓을 수 밖에 없게 되거나 혹은 그와 유사한 상황에 처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본의 아니게 사용자분들로부터 외면을 받거나 비난을 사게 됩니다.
사용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비난에 익숙하지 않은, 처음의 그 순수한 호기심과 재미로 시작했던
개발자들은 그 시점에서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는 현실과 타협하지요.
어찌 되었든 일단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안되니까요.

무슨 일을 하든 현실적으로 개발자들에게도 일반인들처럼 돈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돈과 시간이 여유를 만들고 여유가 취미를 즐길 수 있게 해주고 취미를 즐겨야
코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많이 사용되고 있는 그누보드의 경우 어떨까요?
SIR 에서 제작하는 그누보드도 영카트와의 연동 부분을 빼면
실제로 SIR 이 취할 수 있는 이익은 불분명합니다.

에이젼시에서 많이 쓴다구요?
그게 SIR 의 매출과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영카트 등이 제외되고 순전히
그누보드4 만 가져와서 자기네 솔루션으로 개조한 후 판매하는 업체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SIR 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별 필요 없는 '명성' 정도가 고작입니다.
(아시겠지만, 명성 만으로는 돈이 되지 않고 그런 걸로 빵을 살 순 없습니다.)

그 나마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그누보드가 지금 이럴진데 다른 도구들은 더 언급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다들 없는 시간 쪼개고 여가 시간 줄여가면서 어렵게
개발 하고 유지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같은 도구라도 품질에 차이가 생기고
또 품질이 차이나다보니 사용자층에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이렇게 되다 보니
취할 수 있는 리소스의 크기도 점점 더 벌어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상적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도구가 있는 게 신기한 일입니다.

3. 사라지는 다양성, 혁신의 종말

이 쯤에서 분명히 강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XpressEngine 과 Textcube 를 위에서 1위라고 언급하면서 본의 아니게
마치 거대한 덩치의 골리앗과 같은 늬앙스로 보이게 했지만, 사실은 이들 도구들이
우리나라 웹 도구 역사의 혁신을 이끌어가고 있으며 지금도 해외에서 자랑할만한
도구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확실한 지원군(Google, NHN)과 폭 넓은 사용자층, 그리고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개발 리소스를 가지고 앞으로도 계속 자기 혁신을 이끌어 갈 것이며
그들의 혁신은 곧 우리나라 IT 기술력의 혁신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문제는, 나머지입니다.
정상적인 생태계라면, 상위 개체 그룹들은 그들대로 계속 발전하면서 뻗어나가고
하위 개체 그룹들도 나름대로의 활로를 열어서 공존하는 것이 정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어떻습니까?
과연 나머지 도구들의 운명이 "나름대로의 활로를 열고 공존 가능" 한 상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머지 도구들의 운명은 지금 풍전등화와 같은 상태입니다.

갈수록 줄어드는 사용자층.
점점 늘어나는 부담감.
줄어드는 도움의 손길.
갈수록 힘들어지는 현실.
가벼워지기만 하는 지갑.
떨어져만가는 의욕.

이러한 상황에 오래 처한 도구(혹은 개발자)일수록 계속 개발할 수 있는 여력은
점점 더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앞으로도 이러한 경향이 지속될 것이고
사실 별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자, 주저리 주저리 말이 길었는데요.
위에 언급한 문제들을 근거로 지금 제가 그렇다고 해서
개발자들을 모두 Textcube 나 XpressEngine 처럼 지원을 해줘야 한다거나
혹은 지원금을 걷어서 주자거나 강제로 사용하도록(??!!) 하자거나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고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 속에서
경제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품의 선택과 소비, 그리고 선택된 제품과
사라지는 제품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중언부언이지만 저는 지금
이런 근본적인 부분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문제는,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 즉 다양성이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새로 생태계에 진입하고자 하는
도구들도 거의 줄어들고 있고, 특히나 올해 들어 공개된 게시판 엔진 혹은
블로그 도구는 찾을 수도 없습니다. (phpschool 의 SHOP2 는 쇼핑몰 솔루션이라
제외했습니다. 더구나 이는 상용 제품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HTML5, 웹표준, 접근성, 크로스브라우징, 시맨틱웹 등으로 인해
격동하는 웹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도구는 정말 XpressEngine 과
Textcube 밖에 없을 겁니다. 물론 이들 두 개의 도구가 살아남는 게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 외에 것들이 다 사라지는 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나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생명체 뿐만 아니라, 도구들도 다양성이 존재할 때 더 안전하고 더 유익합니다.
자연이 여러 형태와 모양으로 존재하듯, 도구들도 여러 형태와 모양이 있을 때
견고한 생태계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세상에는 OS 가 Windows 만
있는 게 아니라 Linux, UNIX, Mac OS X, Solaris 도 존재하는 것이고 그들이
때론 협력하고, 때론 경쟁하면서 커다란 IT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국내 웹 도구 분야에서는 이 다양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웹사이트의 대부분이 이제 XpressEngine 으로 제작되고 있으며
블로그의 절대다수는 Textcube 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는 계속될 것이고
지금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도구들은 언젠가 자취를 감추게 될 지도 모릅니다.

사라져가는 도구는 있는데, 새로 탄생하는 도구는 없습니다.
무엇인가 길은 없을까요?

대안 없는 물음만 쏟아낸 저도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덧) 다른 도구들의 현위치...
화이트보드: 개발중단 (사라짐)
이지보드: 개발중단 (사라짐)
로드보드: 개발중단 (사라짐)
케이보드: 개발중단 (사라짐)
ZOG: 개발중단 (사라짐)
심플로그: 개발중단 (사라짐)
디자인보드: 개발중단 (2005년 8월 마지막)
알지보드: 2008년 4월 마지막 업데이트
테크노트: 2008년 9월 마지막 업데이트
JS보드: 2008년 12월 마지막 업데이트
미니보드 the M: 개발중단 (일시적?)
MetaBBS: 2009년 2월 마지막 업데이트
킴스큐: 2009년 3월 마지막 업데이트
AM보드: 2009년 6월 마지막 업데이트



※ 위에 언급된 도구들의 제작자분들중 혹시 제 글이 불편하셨거나
언짢으셨다면 미리 사과의 말씀 전합니다. 결코 여러분들의 노력을 폄하하거나
비하하려는 의도는 한 톨만큼도 없었음을 밝힙니다. (__)

※ GR시리즈들은 본문에서 의도적으로 뺐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만드는 거다보니
객관적인 시각 자체가 안되더군요... 그렇지만 상황은 다른 도구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